1th solo exhibition

The Manufactured earth 제조된 지구

 

노트

 

유년시절 해가 뉘엿뉘엿 질 때면 놀다 지쳐 집으로 돌아가던 길, 풀숲의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와 어스름이 깔린 오솔길을 밝혀주던 반딧불이를 기억한다. 그 시절 다양한 곤충은 나의 재미있는 친구이자 자연의 장난감이었다. 이제는 그들 중 많은 개체와 종이 인간의 자연에 대한 무모한 도전과 파괴로 급감해버렸지만 여전히 곤충은 인간과 공존하며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치열한 생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들에게 불필요한 몸치장이란 없으며 모두 생존을 위해 특화되고 진화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자연이 이들에게 부여한 아름다움 역시 종을 보존하기 위한 진화의 결과다. 이것은 강한 아름다움이며 본질적 생명 에너지의 개화다. 아름답지 않으면 짝에게 선택받지 못해 도태되며, 보호색을 띠지 못하면 천적의 공격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순수하게 기능적인 것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이것은 칸트의 정관적인 관점처럼 지극히 객관적인 미의식은 아닐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기계의 정제된 외면에 익숙해져있지만 실제의 본질은 그 내면에 있는 것이다. 생명을 지탱하게 해주는 구조 자체는 지극히 기능적이며 아름답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기계 미학을 통하여 자연에 실존하는 그들을 구체화시켜 보았다. 보이는 외형이 다가 아닌,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기능적 아름다움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는 작업의 가치를 발견했고 'THE MANUFACTURED EARTH'를 준비하며 유년의 꿈을 다시 꾸었다.

사슴벌레는 단단한 외골격으로 몸을 보호하지만 그가 곤충의 왕으로 군림하기 전에 그것은 나무껍질 아래서 유약한 애벌레로 살아간다. 메탈인 스테인리스강은 무겁고 차갑지만 가공 중에 발생하는 스크랩처럼 얼마든지 유연한 형태로 만들어질 수 있다. 은연중 이들은 닮아있다. 문제는 우리의 선입관을 깨는 것이다. 무기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의 작업은 정적인 사물에 인위적인 움직임을 가하지 않고 메탈 본연에, 열에 따라 변화하는 색채 변화로 물성의 생명력을 표현하며, 이면에 가려졌던 구조를 드러냄으로써 보다 본질적인 존재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나의 작업은 그것이 무엇이든 기존의 물체를 이용하는 아상블라주이며 입체적 콜라주라 볼 수 있다. 이는 인류의 문명이 끝없이 제조와 파괴를 반복하며 자연의 것을 편취하여 만든 아상블라주에 대한 고발이자 우리가 문명이라 부르는 행성의 입체적 콜라주를 곤충이나 동물들을 통하여 미시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다. 다시 유년시절로 돌아가 아름다운 자연의 그들과 친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THE MANUFACTURED EARTH'를 통하여 상실된 나의 꿈을 재조립하고 인공적으로 제조되고 콜라주 된 사람들의 일상과 인류의 미래에 대해 한 번쯤은 여전히 우리가 안녕한지 묻고자 한다. 


 












































































 




 


 













 








위로가기